서촌의 기억으로 쌓아올린 건물엔 백송 향기가 그윽했다

입력 2023-11-30 17:47   수정 2023-12-01 02:10


서촌이라는 명칭은 사람들에게 보통 한옥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서촌에는 다양한 주거 형태와 골목이 남아 있다. 이로 인해 길 하나 차이로 전혀 다른 장소를 만날 수 있다. 아무리 새로운 건물이 많이 들어섰다 해도 여전히 서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동네다.

통의동 35의17,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 사이의 좁은 길을 지나면 미색 벽돌로 지어진 건물을 발견한다. 현재 그라운드 시소의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필자가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주목한 것은 건물에 벽돌을 사용한 방식이다. 이곳에서는 내·외부 전체에 공통적으로 사용된 하나의 벽돌을 쌓기 방식을 달리해 다양한 벽과 천장의 표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양한 쌓기 방식에 의해 형성된 공백을 통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작은 창들도 만들어진다. 하나의 벽돌로 공간 전체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다양성을 꾀하는 이런 방식은, 단일 재료로도 얼마나 풍부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하지만 이 공간이 멋진 진짜 이유는 4층 테라스에 있다.

이 건물 1층은 필로티로 띄워져 있다. 빈 공간엔 작은 연못과 식물들이 정원을 이룬다. 빽빽한 골목을 지나온 사람들은 건물 내부로 입장할 때 기분 좋은 개방감을 느낀다. 이 정원은 이 건물만의 정원이 아니다. 건물의 서측에는 백송 터가 있는데, 이곳은 1990년 태풍으로 스러지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백송이 있던 자리다. 이 백송은 오랫동안 추사 김정희의 집에 있던 백송으로 알려져 있었다.

지금은 원래 백송의 밑동과 새로운 백송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라운드 시소 건물의 정원은 이 백송 터를 연장한다. 새로운 건물에 의해 백송 터가 고립되지 않게 하고 오히려 정원과 터가 서로 확장된 관계를 이루게 된다. 정원으로 들어와 위를 올려다보면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중정 너머 하늘이 보인다. 이 원형의 중정은 건물의 모든 층에서 1층에 위치한 정원과 외부의 경관을 볼 수 있는 시각적 통로가 된다. 2~4층에 있는 전시공간에서 전시를 보다가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중정과, 중정 너머 보이는 서촌의 경관에 의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환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전시공간의 마지막 층인 4층 전시실에서 연결된 테라스로 나서면 서촌의 경관과 인왕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촌의 옛 상징, 현대의 전시와 서촌의 현재 경관을 바라보며 올라온 사람들은, 서촌을 감싸고 있는 인왕산을 만나는 시퀀스를 경험하게 된다. 이는 서촌의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과 장소의 축을 경험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간의 시작 지점에서부터 마지막 층까지를 경험한 것만으로도 서촌이 가지고 있는 시간성의 층위를 경험하게 되는 이것이 이 공간이 가진 가장 큰 의미다. 오래된 장소가 가진 이야기를 현대적인 공간을 통해 새롭게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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